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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요약정리 - 통일신라와 발해

by 까만콩맘 2024. 12. 27.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고, 이후 절반을 나뉘어서 북쪽은 발해, 남쪽은 통일신라 남북국 시대에 돌입하였다. 신라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따라 상대, 중대, 하대로 나뉜다. 삼국유사에 따른 분류도 있지만 삼국사기에 따른 분류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박혁거세부터 진덕여왕까지를 상대, 무열왕부터 혜공왕까지 중대, 선덕왕부터 경순왕까지 하대라고 할 수 있다. 상대는 우리가 앞서 배운 삼국시대에서의 신라라고 할 수 있으며 통일신라부터 중대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을 통일한 676년 이후의 신라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통일신라는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불교문화를 크게 발전시켰으며, 서영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번성했다.

 

통일신라

상대에는 귀족세력이 강하고 왕권이 약했다. 녹읍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녹읍이란 토지에 딸린 세금을 받게끔 수조권을 준 것이다. 녹읍(관료귀족)을 통해 귀족들의 세력이 강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중대에는 왕권이 강화되었음을 아래 사진을 통하여 알 수 있다. 7C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출신의 왕으로 무열왕 시기에 백제가 멸망하였다. 이후 문무왕 때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통일이 완성되었고, 신문왕에 이어서 전제왕권이 강화되었다. 9주 5소경과 9서당 10정을 정비하고, 신라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며,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는 왕권강화에 힘을 썼다. 9주 5소경이란 삼국통일 후 늘어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마련한 지방제도이다. 금성(경주)을 제외 한 전국을 9개의 주로 나누고 5개의 소경을 설치했다. 신문왕이 집권을 하였을 때 김흠돌 모반사건이 일어나면서 귀족들을 숙청함으로써 왕권이 최고로 강했음을 알 수 있다. 8C 성덕왕은 백성들에게 정전(농민들에게 나누어준 논밭)을 지급함으로써 농민들은 왕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졌고, 경덕왕 시기에 녹읍이 부활하면서 왕권이 약화됨을 알 수 있다. 이후 혜공왕의 업적으로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인 성덕대왕 신종을 완성하였다는 것이고, 선덕왕을 지나 신라하대가 시작되었다. 9C헌덕왕 시절 김헌창의 난으로 진골귀족끼리 다툼이 있었고, 진성여왕 시기에 원종과 애노의 난이라는 농민봉기가 일어남으로 보았을 때, 전국적인 농민항생으로 신라 말기에는 민란이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방 세력이 성장하면서 신라 왕실의 힘은 크게 약해졌다. 이로 인해 후백제가 건국(견훤)되고, 후고구려가 건국(궁예)되었으며, 신라에서 소외되었던 6두품과 지방의 호족들은 진골귀족들에게 반발하며 반신라적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 반신라적 세력들은 선종을 지향하고 풍수지리노장사상을 강조하며 훗날 고려를 건국하는 세력이 된다. 그렇게 후삼국의 분열에 접어들게 되었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은 고려에 귀순하면서 통일신라가 멸망)

 

통일신라 요약정리 관련 사진

 

발해

발해는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로 남쪽에 통일신라가 있었다면, 북쪽에는 발해가 있었다. 고구려장군 대조영이 고구려의 옛 땅에 돌아와 건국하였다. 초기 지명은 진국이다. 발해는 고구려인과 말갈인의 연합국가로 지배층은 대부분 고구려유민, 피지배층은 말갈인으로 구성되었다. 이것이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다는 첫 번째 증거가 된다. 또한 발해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 "나 고려왕 대흠무는~"이라고 쓰인 것을 보아 이것 역시 고구려 계승의식을 보여주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발해 문화에서 정혜공주 무덤고구려의 굴식돌방무덤과 유사하며, 온돌장치, 이불병좌상, 발해석등, 연꽃무늬 기와를 통해 고구려적인 요소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발해는 3성 6부의 중앙통치조직과, 상경의 주작대로, 정효공주 무덤의 양식(벽돌무덤)에서 당나라적인 요소도 나타난다.

8C 전반의 무왕은 인안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무왕의 업적으로는 산둥지방을 공격하였고, 일본과 교류를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8C 후반의 문왕은 대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당나라와 친선관계를 맺었다.  도읍을 중경에서 상경, 동경으로 천도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9C선왕은 영호를 건흥으로 삼았고, 문왕 사후의 침체기를 벗어나 중흥을 이루었다. 선왕은 요동을 확보하고 '해동성국'이라 불리는 최대의 전성기가 되었다. 이후 거란의 침입으로 10C 멸망하게 된다.

 

발해 요약정리 관련 사진